절정의 겨울 추위가 시작된다는 소한(小寒)이 지났음에도 올 겨울은 여느 겨울답지 않게 흰 눈 대신 겨울비가 마치 가을비처럼 자박자박 내리면서 삼천리금수강산을 촉촉이 적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계절의 흐름은 어쩔 수 없네요 역시 겨울입니다.

 

여름날 그토록 무성했던 서슬 푸른 잎새들은 이미 낙엽 되어 없어지고 잎새를 잃어버린 겨울 산의 나목(裸木)들은 몸을 바짝 움츠리고 작은 바람에도 소리 내어 떨고 있습니다.

 

이미 겨울은 깊었고 새롭게 시작하는 경자년 새해가 묵은 무술년을 망각의 강(라테의 강) 저쪽으로 밀어내 버렸습니다. 세월에 속아 산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지금의 일상이 비록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내일이면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흐르는 시간을 세월이라고 하지요. 그리스어로는 크로노스라고 합니다. 크로노스는 아버지인 우라노스를 밀어내고 신들의 왕이 되지만 크로노스 역시 아들인 제우스에 의해 추방되어 버립니다. 크로노스는 아버지를 밀어낸 후 몹시 불안 해 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한 행동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도 똑같이 당할까보아... 미래가 항상 불안한 이유입니다.

 

이와 같이 뒤의 것이 앞의 것을 밀어내 버리는 흐름으로서의 시간, 다시 말해 미래에서 현재로, 다시 과거로 흐르는 흐름으로서의 시간을 크로노스의 시간이라고 합니다.

 

초침이 돌면 저만치에 있는 미래가 다가와 지금의 오늘을 과거로 밀어내 버리고 오늘의 자리가 차지하지만 머무는 시간은 "잠깐", 그 오늘도 다시 오는 미래에 의해 금세 지나가 버리지요. 사람을 위하여 기다려 주지를 않습니다.

 

이와 같이 태초에서 종말을 향해 유장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크로노스의 시간이라고 한다면 크로노스의 시간을 타고 다가오는 유의미한 기회를 재빨리 낚아채어, 뜻한 것이 이루어지는 시간, 변화된 삶이 이루어지는 시간을 카이로스의 시간이라고 합니다. (카이로스는 제우스의 아들, 기회의 신)

 

사람이 시간만 죽이는 개념 없는 삶을 살아간다면 이는 바람직하지 않은 크로노스의 삶인데 반해 이 시간에 그리스도를 더한다면 지금까지 타성에 젖어온 내 삶의 패턴이 변화되어 기쁨과 넉넉함이 넘치는 카이로스의 삶으로 변할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네 인생은 한정된 공간에서 촌음에 불과한 짧은 삶을 살다가 흙으로 돌아 가도록 운명 지어진 진토 같은 존재, 인생의 그 날이 풀잎 같은 하찮은 존재, 그 영화가 바람이 불면 없어지는 들의 꽃과 같은 허무한 존재이지만 오늘 있다가 내일이면 아궁이로 던져지는 들풀마저도 돌보시는 우리 하나님께서는" 어차피 미래는 사람의 능력으로는 해결 할 수 없는 것, 미스테리한 미래는 나의 영역, 나의 권능으로만 해결할 수 있으니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게 맡기고 오로지 너희는 내일을 위한 준비를 게을리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왜냐구요, 미래가 오늘을 건너 뛰어 과거로 갈 수가 없고, 미래를 위한 준비는 오늘이 아니면 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정통 기독교 목사로서 행함이 없는 믿음을 싸구려믿음이라고 폄하하고 히틀러 암살에 가담하였던 디히트리히 본 훼퍼는 역사 속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의미심장한 사건은 언제나 현재 뿐입니다. 영원을 살고 싶다면 현재를 섬기십시오라고 말하면서 오늘을  특별히 강조했습니다

 

물과 빵만 있으면 신도 부럽지 않다는 로마시대 에피쿠로스학파의 시인이었던 호라티우스는 과거는 [오늘의 나의 행적을 추억이라는 기억 속에 저장한 것으로] 돌이킬 수 없는 HISTORY, 우리들의 미래는 알 수 없는 MISTERY, 그러나 오늘은 최고의 선물(present is present)이라고 말하면서 그가 남긴 유명한 송시 카르페디엠에서 우리가 말하는 동안에도 덧없는 세월은 우리에게서 멀어져 간다네, 지금 이때를 잡도록 하게나, 내일이면 늦으리니(카르페디엠)”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경자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옛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송구영신의 새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알 수 없는 미래는 하나님께 맡기고, 오로지 그리스도가 내 삶의 기준이 되고, 그 기준을 따라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함으로서 日新, 日日新, 又日新하는 날들이 계속되기를 소망 합니다.